세계탐정협회(WAD) 회원들이 한 세미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디텍티브(주) 제공>
최근 세계적 유명 청바지업체인 ㅍ사에 비상이 걸렸다. 자사 상표를 도용한 이른바 짝퉁(가짜) 상품이 국내 시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벌에 30만∼40만 원 하는 정품 청바지가 정가의 10% 수준에 팔렸다. 다국적 기업인 ㅍ사는 한국시장으로 본격 진출하기에 앞서 벌어진 일이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가짜 상품으로 기업 이미지 손상뿐만 아니라 영업활동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업 진출이 불발에 끝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최고경영진은 회사 전 임직원에게 해결책 마련을 독려했지만 뾰족한 묘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해결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던 중 한 말단직원의 의견이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됐다. 이 말단 직원은 “얼마 전 상표 도용으로 곤혹을 치렀던 한 지인이 한 사설탐정회사의 도움으로 관련 사건을 말끔히 해결했다”고 설명한 것.
국내서는 ‘민간조사원'으로 지칭
담당 임원은 고민하지 않고 직원에게 탐정회사를 수소문하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짝퉁 청바지 제조업체 소탕작전은 말단 직원의 제안과 탐정회사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이 청바지업체 마케팅전략실 박모 상무(47)는 “탐정회사에 사건을 의뢰해 2개월 여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외국의 경우 (사설탐정에 의뢰하는 경우가) 보편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 등으로 의뢰에 적지 않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탐정회사의 치밀한 분석과 추적 끝에 중국의 한 지역에서 제조된 상품이 국내에 밀반입돼 판매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탐정회사가 중국 해안에서 남대문 시장에 이르는 불법제품의 유통 경로와 사진 등 증거자료와 함께 의뢰인인 법무법인에 넘겨지면서 일단락됐다.
이른바 사설탐정으로 알려진 ‘PI (Private Investigator)'는 보수를 받고 정보를 수집, 분석해 제공하는 민간인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사설탐정이란 명칭이 통용돼 왔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2005년부터 ‘민간조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탐정이란 말을 쓰는 것은 물론, 민간인이 소송 등 법률행위를 전제로 조사행위를 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물론 법정대리인에게 컨설팅 형식으로 간단한 자료조사와 보조업무 등 제한된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총기 소지는 물론 주부 탐정이 활약하는 데 큰 제한이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 분야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지적재산권과 상표 도용 등으로 곤혹을 겪고 있는 기업관계자와 업계는 합법적인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탐정업체 관계자는 “법안이 제정되고 활성화하면 PI업계 종사자는 물론 기업이나 개인 실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탐정제도는 몇 년 동안 합법화가 추진됐지만 제자리 걸음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진척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민간조사업법이 올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행정자치위원회에,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 발의법안이 운영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행자위의 경우 4월 중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런 법제정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 개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 ▲ 변호사 등 직무 침해와 이로 인한 갈등 초래 ▲ 퇴직공무원들의 생계수단 마련으로 전락할 가능성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합법화할 경우 우리나라 PI시장 규모는 3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현재 보험사기는 2조~2조4000억 원에 달하는데 적발은 2006년 기준 3만4567건에 2490억 원 즉 10%에 불과했다. 현행 보험상 보험조사관들은 목격자 등 제3자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자격을 갖춘 PI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적발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 인력송출업체들이 주로 맡고 있는 카드회사의 미납자 소재 확인도 PI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법조계 일각에선 “사생활 침해 우려”
이 같은 시장 전망에 따라 해외 유명 탐정업체들의 한국 진출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상주 주재원을 두고 활약하고 있는 외국 PI업체는 20여 개사 수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워낙 보안을 생명으로 하다 보니 그들의 면면은 거의 공개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는 스웨덴 다국적 기업 시큐리타스(Securitas)가 인수한 핀커턴(Pinkerton) 사도 한국으로 재진출하기 위해 PI스카우트에 나선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외국의 민간조사업체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컨설팅업체로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민간조사 업무를 보고 있다”면서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 민간조사업체는 모두 20여 개에 이르고,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만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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